부모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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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마음」 朴英順 사장의 창업 秘話

보도자료 출처 :
월간조선
날짜 :
2005-04-01
조회수 :
2209

◈ (주)케이씨넷 「부모마음」 朴英順 사장의 창업 秘話

2000만원으로 창업한 베이비시터 파견업『젊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성공하는 데 자신 있었어요』
『다 늙어서 웬 창업이냐구요?』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자식들이 용돈 대준다는데 손주나 봐 주며 편하게 살지, 다 늙어서 웬 창업이냐구요』

베이비시터(Babysitter: 아기 어머니가 집을 비울 때 어머니를 대신해 아기의 보육을 맡는 사람) 파견회사 (주)케이씨넷 「부모마음」의 朴英順(박영순·57) 사장은 퇴직금을 털어 창업한 「황혼창업」의 대표적 경우다.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朴사장이 온라인 사업이 핵심인 베이비시터 파견업 창업을 결심하자 주변의 반대가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었다. 그의 딸은 『우리 엄마 저 바람이 언제나 빠지시려나』라며 조롱 섞인 말을 건넸고, 남편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고 한다.

朴사장은 퇴직위로금에서 2000만원을 털어 2001년 5월, 「나홀로 창업」길에 올랐다. 1000만원은 사무실 임대료, 1000만원은 홈페이지 구축비용으로 쏟아 부었다. 창업한 지 3년째에 접어든 지금, 4명의 직원이 전부인 「부모마음」은 총회원 2500여 명, 유료회원 600여 명을 두고 연매출액 3억원을 내는 안정 기업으로 성장했다.

朴사장은 휘하 직원 400~500명을 거느린 웅진출판사의 본부장을 지내다가 2000년 10월 末에 퇴직했다. 방문판매부터 시작해서 판매팀장 등을 거쳐 49세에 해당 분야 최고위 매니저까지 오른 것이다. 회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됐다. 항상 최고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15년 이상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능력 발휘의 기회를 기다리며 있는 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후회 없이 제 능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해요. 사무직과는 달리 판매직은 일정 월급이 거의 없는 인센티브제였는데, 실적이 좋아서 회사에서 포상휴가로 세계 곳곳을 보내줬어요. 북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쪽만 못 가보고 거의 다 가본 것 같아요』

朴사장은 회사를 그만두자 오로지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한다.실컷 자고, 보고 싶은 비디오 빌려 보면서 쉬고, 사우나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휴식을 취했다.
초기엔 전화요금도 안 나와
『이런 생활을 2주일 하니까 도저히 더 이상은 못 하겠더라구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갈 곳이 없으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친구들을 만나도 관심분야가 달라서 대화가 안 통했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서 대화 소재에서 벗어나 엉뚱한 생각을 하기 일쑤였죠』

그는 출판사에 다니면서 月 평균 400만~500만원을 벌었지만 대부분 자녀 유학비로 나갔기 때문에 모아 둔 노후 자금이 없었다. 판매직이어서 퇴직금도 따로 없었다. 회사에서 위로금 차원에서 준 3000만원이 노후 자금의 전부였다.


『재수 없으면(웃음)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 돈 가지고 살 순 없잖아요. 자식들한테 짐이 되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퇴직하고 각종 취업·창업 정보를 접하다가 여성 인력 활용의 발목을 잡는 육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큰며느리와 결혼한 딸이 육아 문제 때문에 고심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며 베이비시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 것도 계기가 됐다.


퇴직한 그는 7개월 동안 창업에 필요한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를 했다. 데일 카네기 최고 경영자 코스 42시간, 여성경제인협회 코스 3개월, 여성인력센터 교육 240시간을 포함해 각종 창업정보 회사, 컨설팅 회사,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창업 관련 교육을 총 400시간 이상 받았다.


2001년 5월, 朴사장은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부근에 베이비시터 파견회사 (주)케이씨넷 「부모마음」을 창업하고, 「몸으로 때우겠다」는 각오로 혼자서 회사를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 시장은 30代의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베이비시터 관련 사이트는 3~4개가 고작이었다.


그는 물값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정수기 물을 떠 나르고, 밥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청소와 잔심부름도 물론 朴사장 몫이었다. 회사 간판을 내걸긴 했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손에 보이지 않았다. 관련 사이트를 검색해 베이비시터가 필요한 사람에게 느린 타자솜씨로 떠듬떠듬 이메일 편지를 보내고, 인터넷 카페와 벼룩신문의 구인광고를 보며 전화를 거는 것이 하루 일정의 전부였다.


초기에는 확보한 시터가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문의 전화가 많이 들어와도 걱정이 됐다고 한다. 시터가 부족하면 朴사장이 직접 시터로 나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업 후 3개월 만에야 첫 고객이 생겼고, 6개월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수수료는 건당 100만원 이하가 10%, 100만원 이상은 7~8%. 시터가 7시간 아기를 봐 주면 비용은 3만원 정도이고, 수수료는 3000원이다. 그 3000원을 벌기 위해 열 번 이상 전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수고료는 고사하고 전화요금도 안 나온 때가 많았다고 한다.


『초창기 1년 동안은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웅진에서 잘 나가던 시절엔 한 달에 2000만원을 벌다가 여기에서 2000~3000원씩 벌다 보니 미칠 것 같았죠』


그럭저럭 적자가 해소되기 시작하자 「부모마음」은 전문상담사 1명, 프로그래머 1명, 홈페이지 관리자 1명의 정식직원을 두게 됐다.


「부모마음」은 2003년부터 안정궤도에 들어서게 됐고 2003년 8월부터는 고양시 본점 외에 경기도 부천·안양·분당, 서울 송파에 센터을, 강남에 직영점까지 두게 됐다. 본점에서 성사되는 건수는 한 달 평균 30~40건, 한 달 매출은 2500만원 정도. 작년 末부터는 회사가 쑥쑥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한다.


「부모마음」의 연간 매출액은 3억원 정도이고, 순이익이 매출액의 20% 수준이다.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회사 확장에 쏟아 붓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朴사장에게 들어오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朴사장은 유료회원 가입 제도였던 베이비시터 업계에 최초로 후불제를 도입했다. 본점, 센터, 직영점에 등록된 베이비시터는 약 1200명. 이들의 연령은 20代 후반부터 60代까지 다양하고 평균 연령은 40代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베이비시터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우선 자신의 사진이 부착된 프로필을 작성해 시터 회원 등록을 해 둔다. 부모 회원의 조건에 부합하는 시터 회원은 고양시 사무실에 와서 朴사장 면접을 보게 되고, 면접에 합격하면 경기도 고양시 고양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80시간짜리 베이비시터 전문 교육을 받게 된다. 朴사장은 전문 교육을 받은 베이비시터만 파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산에서 너무 먼 지역의 시터들에게는 가까운 지역 여성인력센터를 소개시켜 주거나 朴사장이 직접 강남에서 교육을 하여 파견한다. 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수유·목욕·안전수칙 등 베이비시터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 숙지다.


그는 퇴직 후 창업을 하고 싶으나 용기를 못 내는 사람들한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첫째,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라. 요즘은 교육기관도 많고, 창업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이나 신문이 많기 때문에 창업 준비 여건이 매우 좋다. 시장 조사는 필수다.


둘째, 리스크 부담이 적은 사업을 택하라. 젊은 사람은 깨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나 노인은 한 번 깨지면 끝이다. 「내가 음식을 좀 하니까 식당을 차려야겠다」는 式의 발상은 위험하다. 식당은 시설비 때문에 초기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다른 식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종목이 있으면 괜찮지만 섣불리 뛰어들면 절대 안 된